생물다양성이 무너지면 우리 옷도 무너진다
글로벌 패션 그룹 H&M이 최근 자사 지속가능성 페이지를 통해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을 그룹의 핵심 의제로 다시 짚었다. 눈에 띄는 건 이번 발표가 단순한 캠페인성 선언이 아니라, 토지 관련 영향에 대한 과학기반목표(science-based targets)를 이미 수립했고 그 세부안을 올가을 공개하겠다고 시점까지 못박았다는 점이다. 옷 한 벌이 만들어지기까지 거치는 토양·숲·물·꽃가루받이 곤충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반이 최근 수십 년 사이 빠르게 흔들려왔다는 문제의식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매일 아침 옷장에서 무심코 꺼내 입는 옷 한 장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생태계와 만난다는 사실은, 일상의 루틴을 오래 유지하려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짚고 넘어갈 만하다.
무엇이 달라졌나
H&M그룹은 이번에 생물다양성을 "생태계의 토대"로 정의하며, 그룹의 원자재 조달과 생산활동 전체가 건강한 생태계에 의존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특히 목화(면화) 같은 원료 조달이 비옥한 토양, 숲, 깨끗한 물, 꽃가루받이 매개체에 직접적으로 기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룹의 활동이 그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밝혔다. 이전까지 지속가능성 커뮤니케이션이 탄소배출·재활용 소재 같은 기후 지표에 집중돼 있었다면, 이번엔 생물다양성이라는 축을 별도로 세우고 토지 전환 회피, 토지 발자국 축소, 우선순위 경관(priority landscapes) 참여라는 세 갈래의 과학기반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다르다.
그룹은 이 작업을 Science Based Targets Network(SBTN)의 기업참여프로그램(Corporate Engagement Programme)에 정식으로 참여해 그 방법론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자체 기준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검증된 외부 프레임워크를 따른다는 의미여서 이전의 자율적 선언과는 무게가 다르다. 세부 목표치의 전문은 올가을 별도로 공개될 예정이다.
왜 지금인가
생물다양성 이슈가 패션업계에서 새삼 부각되는 시점은 우연이 아니다. 그동안 기후위기 대응은 탄소중립·재생에너지 전환처럼 측정하기 쉬운 지표 중심으로 진행돼 왔지만, 정작 옷의 원재료를 만들어내는 토양과 생태계의 건강은 상대적으로 뒷전에 밀려 있었다. H&M그룹 스스로도 생물다양성 손실이 "복잡하고 시스템적인 문제"라고 짚으며, 생물권 건전성(생물종과 생태계의 다양성)과 토지시스템 변화(토지이용이 자연서식지와 생태계 기능에 미치는 영향)라는 두 축으로 문제를 구조화했다.
이런 프레임을 대형 패션기업이 공식적으로 채택한다는 것은, 옷을 만드는 산업 전체가 원료 공급망 상류의 토양·수자원 관리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 옷을 사들이는 소비 패턴이 결국 특정 지역의 땅과 물을 반복적으로 소모시킨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시점의 발표는 "얼마나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인가"를 넘어 "그 옷이 딛고 선 땅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소비자의 관심을 확장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매년 가을 신제품 시즌이 시작되는 시점에 목표치를 공개하기로 한 점도, 이 의제를 실제 구매 결정과 나란히 두려는 계산으로 읽힌다.
다음에 볼 것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건 방향과 방법론(SBTN 기반 토지 목표)뿐이고, 구체적인 수치와 이행 일정은 올가을 공개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그때 발표될 목표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세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 토지 전환 회피와 토지 발자국 축소를 구체적으로 어떤 지표와 기준연도로 측정하는지, 둘째, "우선순위 경관"으로 어느 지역이 지정되는지, 셋째, 이 약속이 실제 원사·원단 조달 계약이나 공급업체 평가 기준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다. 이런 세부안이 나와야 이번 발표가 선언에 그치는지, 실제 조달 방식을 바꾸는 구속력 있는 기준인지 가늠할 수 있다. 옷장을 오래 채우는 습관을 지키려는 독자라면, 가을에 나올 이 목표치 원문과 함께 자신이 즐겨 입는 브랜드들이 원료 산지의 토양과 생태계를 어떻게 다루는지 함께 확인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결국 오래 입을 옷을 고르는 루틴은 오래 버틸 수 있는 땅을 고르는 일과 멀리 있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