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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The Routine

계절이 사라진 런웨이, 오늘 날씨대로 입는 법

요시오쿠보가 그린 계절 없는 옷차림

SOYUL  —  2026.09.01  —  5 MIN

요시오쿠보가 그린 계절 없는 옷차림

지난 8월 31일, 도쿄 컬렉션의 핵심 행사인 라쿠텐 패션위크 도쿄가 개막했다. 그 첫 무대를 연 것은 2009년 봄여름 시즌부터 줄곧 도쿄 컬렉션에 참가해온, 디자이너 경력 20년을 넘긴 베테랑 구보 요시오가 이끄는 브랜드 요시오쿠보다. 이번 시즌의 콘셉트는 내추럴 본 노마드(Natural Born Nomad),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무리 짓지 않으며 자기 의지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을 옷으로 옮겨낸 무대였다. 오프닝 무대는 늘 그 시즌 전체의 분위기를 미리 읽을 수 있는 자리로 여겨지는데, 이번 요시오쿠보가 정면으로 다룬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앞으로 이어질 도쿄 컬렉션 일정 전반에서 되풀이될 만한 주제로 보인다. 옷을 계절에 맞추는 게 아니라, 그날의 날씨와 그날의 행동에 맞춰 겹쳐 입고 벗는다는 발상은 패션쇼 안에서만 머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아침 옷장 앞에서 반복하는 선택과도 맞닿아 있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변화는 계절 옷이라는 틀 자체를 허무는 방식이다. 봄여름 컬렉션임에도 다운재킷이 무대에 등장했는데, 이는 실수나 파격이 아니라 그날의 기후와 그날의 행동에 맞춰 옷을 겹쳐 입고 조절한다는 발상을 스타일링으로 구현한 결과다. 얇은 소재를 여러 겹 겹친 레이어드, 이종 소재를 섞은 조합, 유선형 실루엣이 런웨이를 채웠고, 셔츠와 베스트, 아우터를 겹쳐 입으면서도 전체 무게감은 가볍게 유지됐다. 필요한 것만 걸치고 이동하는 노마드의 태도를 레이어드라는 기법으로 옮긴 셈이다. 민족의상을 연상시키는 프린지와 엮은 듯한 디테일도 곳곳에 배치됐지만, 특정 민족이나 지역을 가리키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처리했다. 구보 디자이너는 이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민족이라는 이미지로 설명했는데, 땋아 만든 드로코드는 전통 의상을 연상시키면서도 스포츠웨어의 기능적 부품처럼 보이도록 디자인됐다. 카키·베이지·브라운·블랙 등 사막과 건조한 대지를 떠올리게 하는 어스 컬러 팔레트를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발밑에는 러닝화가 두드러졌고, 컬렉션 곳곳에는 신체를 지탱하는 뼈를 연상시키는 모티프가 숨겨져 있어 러너의 신체성과 옷을 은근히 연결했다.

왜 지금인가

도쿄 컬렉션의 오프닝 무대라는 자리는 상징적이다. 그 시즌 전체가 어떤 문제의식으로 흘러갈지 예고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20년 넘게 도쿄 컬렉션을 지켜온 베테랑 디자이너가 계절이라는 개념 자체를 정면에서 다뤘다는 점은 가볍게 넘길 신호가 아니다. 패션위크는 본래 다음 계절에 유행할 실루엣과 컬러를 예고하는 자리였지만, 최근 여러 시즌에 걸쳐 봄여름과 가을겨울의 경계가 실제 기후에서부터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꾸준히 나온다. 다운재킷을 봄여름 무대에 올린 선택은 그런 흐름에 대한 디자이너 나름의 응답으로 읽힌다. 여기에 로스앤젤레스 해변에서 낡은 차가 멈추고 히피 같은 옷차림의 젊은이가 자연스럽게 달리기 시작하는 장면을 목격한 경험이 출발점이 됐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별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서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일상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컬렉션 전체의 정서를 만들었다. 이는 정해진 시즌과 옷차림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그날의 컨디션과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태도가 패션의 언어로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에 볼 것

이번 무대는 몽골의 이동식 가옥인 게르를 런웨이 한가운데 배치하고, 쇼 후반 조명이 꺼지면 형광색 발자국이 바닥에 떠오르는 연출로 마무리됐다. 밝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장치는 스포티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이 컬렉션이 옷 자체만이 아니라 이동과 흔적이라는 서사를 함께 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라쿠텐 패션위크 도쿄는 이제 막 문을 연 참이라, 앞으로 이어질 다른 브랜드들의 무대에서 계절 경계를 허무는 비슷한 문제의식이 얼마나 되풀이되는지 지켜볼 만하다. 요시오쿠보가 러닝이라는 소재를 기능적인 러닝웨어로 직행시키지 않고 여행·민족·일상의 관찰을 거쳐 옷으로 변환했다는 점도 이어지는 시즌에서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궁금증을 남긴다. 시즌 구분 없이 그날의 기후와 활동에 맞춰 겹쳐 입는다는 태도는 하나의 패션쇼 콘셉트로 끝나기보다, 옷장을 계절별로 나누는 대신 필요에 따라 조합하는 방식으로 일상에 스며들 여지가 있어 보인다. 다음 도쿄 컬렉션 일정에서 이 흐름이 얼마나 이어지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YOSHIOKUBOPHOTOSSEIGO ISHIZAKAWWDJAPAN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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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사라진 런웨이, 오늘 날씨대로 입는 법

요시오쿠보가 그린 계절 없는 옷차림

SOYUL — 2026.09.01 — 5 MIN

요시오쿠보가 그린 계절 없는 옷차림

지난 8월 31일, 도쿄 컬렉션의 핵심 행사인 라쿠텐 패션위크 도쿄가 개막했다. 그 첫 무대를 연 것은 2009년 봄여름 시즌부터 줄곧 도쿄 컬렉션에 참가해온, 디자이너 경력 20년을 넘긴 베테랑 구보 요시오가 이끄는 브랜드 요시오쿠보다. 이번 시즌의 콘셉트는 내추럴 본 노마드(Natural Born Nomad),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무리 짓지 않으며 자기 의지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을 옷으로 옮겨낸 무대였다. 오프닝 무대는 늘 그 시즌 전체의 분위기를 미리 읽을 수 있는 자리로 여겨지는데, 이번 요시오쿠보가 정면으로 다룬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앞으로 이어질 도쿄 컬렉션 일정 전반에서 되풀이될 만한 주제로 보인다. 옷을 계절에 맞추는 게 아니라, 그날의 날씨와 그날의 행동에 맞춰 겹쳐 입고 벗는다는 발상은 패션쇼 안에서만 머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아침 옷장 앞에서 반복하는 선택과도 맞닿아 있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변화는 계절 옷이라는 틀 자체를 허무는 방식이다. 봄여름 컬렉션임에도 다운재킷이 무대에 등장했는데, 이는 실수나 파격이 아니라 그날의 기후와 그날의 행동에 맞춰 옷을 겹쳐 입고 조절한다는 발상을 스타일링으로 구현한 결과다. 얇은 소재를 여러 겹 겹친 레이어드, 이종 소재를 섞은 조합, 유선형 실루엣이 런웨이를 채웠고, 셔츠와 베스트, 아우터를 겹쳐 입으면서도 전체 무게감은 가볍게 유지됐다. 필요한 것만 걸치고 이동하는 노마드의 태도를 레이어드라는 기법으로 옮긴 셈이다. 민족의상을 연상시키는 프린지와 엮은 듯한 디테일도 곳곳에 배치됐지만, 특정 민족이나 지역을 가리키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처리했다. 구보 디자이너는 이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민족이라는 이미지로 설명했는데, 땋아 만든 드로코드는 전통 의상을 연상시키면서도 스포츠웨어의 기능적 부품처럼 보이도록 디자인됐다. 카키·베이지·브라운·블랙 등 사막과 건조한 대지를 떠올리게 하는 어스 컬러 팔레트를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발밑에는 러닝화가 두드러졌고, 컬렉션 곳곳에는 신체를 지탱하는 뼈를 연상시키는 모티프가 숨겨져 있어 러너의 신체성과 옷을 은근히 연결했다.

왜 지금인가

도쿄 컬렉션의 오프닝 무대라는 자리는 상징적이다. 그 시즌 전체가 어떤 문제의식으로 흘러갈지 예고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20년 넘게 도쿄 컬렉션을 지켜온 베테랑 디자이너가 계절이라는 개념 자체를 정면에서 다뤘다는 점은 가볍게 넘길 신호가 아니다. 패션위크는 본래 다음 계절에 유행할 실루엣과 컬러를 예고하는 자리였지만, 최근 여러 시즌에 걸쳐 봄여름과 가을겨울의 경계가 실제 기후에서부터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꾸준히 나온다. 다운재킷을 봄여름 무대에 올린 선택은 그런 흐름에 대한 디자이너 나름의 응답으로 읽힌다. 여기에 로스앤젤레스 해변에서 낡은 차가 멈추고 히피 같은 옷차림의 젊은이가 자연스럽게 달리기 시작하는 장면을 목격한 경험이 출발점이 됐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별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서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일상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컬렉션 전체의 정서를 만들었다. 이는 정해진 시즌과 옷차림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그날의 컨디션과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태도가 패션의 언어로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에 볼 것

이번 무대는 몽골의 이동식 가옥인 게르를 런웨이 한가운데 배치하고, 쇼 후반 조명이 꺼지면 형광색 발자국이 바닥에 떠오르는 연출로 마무리됐다. 밝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장치는 스포티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이 컬렉션이 옷 자체만이 아니라 이동과 흔적이라는 서사를 함께 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라쿠텐 패션위크 도쿄는 이제 막 문을 연 참이라, 앞으로 이어질 다른 브랜드들의 무대에서 계절 경계를 허무는 비슷한 문제의식이 얼마나 되풀이되는지 지켜볼 만하다. 요시오쿠보가 러닝이라는 소재를 기능적인 러닝웨어로 직행시키지 않고 여행·민족·일상의 관찰을 거쳐 옷으로 변환했다는 점도 이어지는 시즌에서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궁금증을 남긴다. 시즌 구분 없이 그날의 기후와 활동에 맞춰 겹쳐 입는다는 태도는 하나의 패션쇼 콘셉트로 끝나기보다, 옷장을 계절별로 나누는 대신 필요에 따라 조합하는 방식으로 일상에 스며들 여지가 있어 보인다. 다음 도쿄 컬렉션 일정에서 이 흐름이 얼마나 이어지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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