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드가 두 번째 피부가 된 SS27 런웨이
파리 패션위크에서 마티유 블라지가 샤넬 2027년 봄·여름 컬렉션을 발표했다. 취임 1년을 맞은 그는 이번에도 설 자리를 거대한 무대로 바꿔놓았다. 작년에는 우주와 거대한 버섯이 자라는 동화 속 정원이었고, 이번에는 런웨이 위로 거대한 새들이 날아올랐다. 제목은 "같은 동전의 다른 얼굴들"로, 반항적인 젊은 여성에서 패션계를 뒤흔든 혁신가로 변모한 가브리엘 샤넬의 생애를 하나의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계속 움직이는 이야기로 다시 풀어냈다는 점에서 이번 시즌이 유독 눈에 띈다. 주목할 대목은 변신이라는 주제를 무대 장치로만 그리지 않고 실제로 입을 수 있는 옷의 구조 자체에 새겨 넣었다는 점이다. 에드워드 시대 코르셋은 뼈대의 흔적만 남긴 페플럼과 곡선 보디스로 가벼워졌고, 하우스의 상징인 트위드는 신축성 있는 저지처럼 다시 짜였다. 하루 동안 입는 옷이 아침부터 자정까지 형태를 바꿔가며 따라오는 방식이, 계절과 생활 리듬에 맞춰 옷장을 다시 짜는 이들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한 시즌짜리 유행이 아니라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의 설계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패션쇼 소식치고는 유독 일상과 가깝게 읽힌다.
무엇이 달라졌나
구체적으로 보면 이번 컬렉션은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 에드워드 시대풍 코르셋 라인을 완전히 걷어내는 대신 뼈대의 흔적, 페플럼, 곡선형 보디스만 남겨 가브리엘 샤넬이 란제리 아틀리에에서 경력을 시작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둘째, 남성복에서 가져온 테일러링을 해체해 끝단을 마감하지 않은 질레(gilet)와 팬츠, 펜슬스커트 수트로 바꿔놓았다. 격식을 차리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듯한 느슨함을 일부러 남긴 셈이다. 셋째, 1930년대 이브닝웨어를 시퀸과 바이어스 컷, 섬세한 니트로 되살리면서도 격식 있는 드레스를 티셔츠처럼 가볍게 걸칠 수 있도록 풀어냈다.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하우스의 얼굴인 트위드 그 자체에서 일어났다. 신축성과 경량성을 더한 이른바 '스목드 트위드(smocked tweed)'는 뻣뻣하게 각 잡힌 재킷이 아니라 몸에 붙는 두 번째 피부처럼 만들어졌는데, 이는 가브리엘 샤넬이 가장 먼저 선보였던 저지 속옷 소재로 거슬러 올라가는 설계다. 투명한 프린트 실크를 여러 겹 겹쳐 구름처럼 부풀어 오르는 실루엣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침, 황금빛 오후, 밤으로 이어지는 하루의 흐름에 따라 옷의 형태 자체가 조금씩 달라지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이번 컬렉션은 시간대별로 다른 옷을 갖춰 입는 대신 한 벌의 옷이 하루를 따라오게 만든 쪽에 가깝다. 제비와 칼새는 버튼과 주얼리, 자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자유라는 주제를 옷 전체에 새겨 넣었다.
왜 지금인가
이 변화가 눈에 띄는 이유는 블라지의 이력과 지금 이 시점이 겹치는 지점에 있다. 그는 샤넬 114년 역사에서 네 번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2024년 12월 임명돼 2025년 4월 공식적으로 자리를 시작했다. 보테가 베네타에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고, 그 전에는 캘빈클라인 디자인 디렉터, 셀린과 메종 마르지엘라를 거쳤다. 즉 그는 하우스 고유의 상징을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소재와 구조를 해체해 다시 짜는 방식으로 평가받아 온 디자이너다. 취임 1년이라는 시점에서 그는 매 시즌 완전히 다른 무대, 우주와 버섯 정원에 이어 이번에는 거대한 새떼를 세우면서도 샤넬이라는 하우스의 코드, 즉 트위드와 리틀 블랙 드레스, 코르셋 해방이라는 유산은 놓지 않았다. 가브리엘 샤넬은 1920년대 코르셋에서 여성을 해방시킨 샤넬 수트와 리틀 블랙 드레스로, 1930년대에는 더 여성스러운 이브닝웨어로 20세기 패션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다. 블라지가 이번 시즌 제목을 같은 동전의 다른 얼굴들로 정한 것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을 고정하지 않고 계속 다시 쓰는 작업이 지금 하우스에 필요하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통째로 비우고 다시 채우는 대신, 뼈대는 남기고 유연성만 더해 하루 전체를 커버하는 방식. 이것이 오래 입을 옷을 고르는 이들에게 지금 유독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지점이고, 유행을 좇기보다 매 계절 조금씩 손봐 가며 오래 쓰는 물건을 선호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다음에 볼 것
이번 시즌에서 가장 눈여겨볼 지점은 스목드 트위드가 실제 매장에 어떤 형태로 풀릴지다. 트위드 재킷은 샤넬의 상징이지만 뻣뻣하고 격식 있는 소재라는 인식이 강했던 만큼, 신축성 있는 버전이 데일리웨어로 자리 잡는다면 이는 하우스 전체의 착용 습관을 바꿔놓을 수 있는 변화다. 투명 실크 레이어링과 바이어스 컷 이브닝웨어가 레드카펫이 아닌 일상복 맥락에서 어떻게 재해석되는지도 함께 지켜볼 부분이다. 쇼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Gimme More" 믹스로 마무리되며 객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춘 장면은, 격식과 느슨함 사이의 균형이라는 이번 컬렉션의 주제를 공식 피날레에서도 그대로 드러낸 선택이었다. 블라지가 취임 첫 해에 보여준 세 번의 무대, 우주와 버섯이 자라는 정원, 그리고 거대한 새떼는 매번 완전히 다른 세계를 열었지만 그 안의 옷은 계속해서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격식과 편안함, 과거와 지금을 어떻게 한 벌의 옷 안에 공존시킬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다음 시즌에도 이 질문이 어떤 새로운 무대와 소재로 이어질지, 그리고 스목드 트위드처럼 일상에 바로 들어올 수 있는 디테일이 또 등장할지가 이후 컬렉션을 지켜볼 기준이 될 것이다. 결국 한 시즌의 화제보다 오래 입을 수 있는 구조가 얼마나 남는지가 이 하우스를 계속 지켜보게 만드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