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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같은 어둠을 짓는 디자이너의 런웨이

리자 킨의 SS27 데뷔 쇼, 흙과 물로 완성한 무대

SoyulEditor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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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 킨의 SS27 데뷔 쇼, 흙과 물로 완성한 무대

런던 스트랜드가 지하, 조명이 거의 꺼진 180 더 스트랜드 공간에 콘크리트 블록 여섯 개와 물이 흐르는 금속 비계가 세워졌다. 2026년 런던패션위크 SS27 시즌, 신진 디자이너 리자 킨이 처음으로 연 단독 런웨이 무대였다. 쇼가 시작되기 전 그의 팀 스태프는 앞줄에 앉은 취재진에게 "혹시 값비싼 옷을 입고 오셨나요"라고 물으며, 이 자리가 "직격 물벼락 구역"이라고 미리 귀띔했다 — 농담 반 경고 반이었다. 실제로 쇼가 끝날 무렵 무대는 흙탕물로 덮였고, 객석 코앞까지 물이 튀어들었다. 한 시즌짜리 자극적인 이벤트로 소비되고 끝날 수도 있었지만, 이 쇼가 눈길을 끈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2022년 센트럴세인트마틴을 졸업한 뒤 킨이 몇 시즌째 꾸준히 쌓아온 어둡고 부식하는 세계관이, 이번에 처음으로 완전한 설치 공연 형식으로 확장됐다는 점이다. 단발성 스펙터클이 아니라 매 시즌 같은 세계를 반복해서 짓고 다듬어온 작업 방식 자체가, 이 쇼를 단순한 패션쇼 이상으로 만든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쇼의 제목은 '레인 온 마이 퍼레이드(Rain On My Parade)'다. 런웨이 중앙에는 급진적 디자인 스튜디오 플레이바디(playbody)가 만든 설치물이 자리했다. 콘크리트 블록 여섯 개가 기둥처럼 서서 금속 비계로 짠 거대한 패널을 떠받쳤고, 그 아래로 검은 타포린을 깐 물웅덩이가, 전체 둘레에는 흙이 깔렸다. 헤즌(HEZEN)의 음산한 스코어가 흐르며 조명이 완전히 꺼지자, 은색 페인트를 칠하고 속옷 차림이 된 모델 여섯 명이 콘크리트 블록을 타고 올라 패널을 어깨에 짊어졌다. 천장에서는 호스가 패널 위로 물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거즈처럼 성긴 패널 표면을 타고 흘러내린 물줄기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 알렉산더 맥퀸의 1998년 SS98 쇼 피날레 '골든 샤워'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 사이로 모델들이 걸어나오며 물을 튀기고 진흙을 콘크리트 바닥 위로 끌고 다녔다. 왁스 처리한 가죽, 끌리는 검은 망토, 거즈 소재 흰 드레스, 찢어발긴 원단이 등장했고 몸에 활과 화살을 두른 룩, 금발 아기를 가슴에 동여맨 룩도 있었다. 첫 번째 룩은 해진 천사 날개를 달고 긴 천자락을 흙탕물 속으로 끌며 등장했다. 일반적인 패션위크 쇼가 깨끗한 런웨이 위에서 옷의 실루엣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면, 이 쇼는 옷을 물과 진흙, 콘크리트라는 물리적 환경 안에서 망가뜨리며 완성했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왜 지금인가

런던패션위크는 매 시즌 대형 브랜드들의 화려한 쇼 사이에서, 센트럴세인트마틴 같은 명문 스쿨을 갓 졸업한 신진 디자이너들이 첫 단독 쇼를 여는 무대이기도 하다. 킨 역시 2022년 졸업 이후 별도 레이블 형태로 꾸준히 활동해왔고, 이번 SS27 시즌 단독 캣워크는 그가 졸업 후 몇 시즌 만에 처음으로 완결된 쇼 형식을 갖춘 자리였다. 최근 몇 년 패션위크는 옷 자체보다 경험과 이미지로 기억되는 순간을 만드는 데 공을 들여왔다 — SNS로 순식간에 퍼지는 짧은 영상 한 컷이 브랜드 인지도를 좌우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거대 브랜드들이 대형 세트와 유명인 캐스팅으로 이 경쟁에 뛰어드는 사이, 예산이 많지 않은 신진 디자이너에게는 작지만 강렬한 한 장면을 만드는 능력이 오히려 생존 전략이 된다. 플레이바디와의 협업으로 만든 콘크리트·물·흙 설치는 값비싼 세트가 아니라 개념과 노동력으로 만든 무대라는 점에서, 자본보다 세계관으로 승부하는 신진 디자이너의 전형적인 선택이었다. 또한 맥퀸의 SS98을 소환한 방식도 우연이 아니다 — 패션계가 다시 극적이고 서사적인 런웨이 연출을 그리워하는 흐름 속에서, 과거의 상징적 피날레를 현재의 몸과 재료로 재해석하는 시도가 반복해서 주목받고 있다.

다음에 볼 것

킨에게 이번 쇼가 의미 있는 지점은 어디까지 지속할 것인가에 있다. 2022년 졸업 이후 그는 매 시즌 같은 어둡고 부식하는 세계관을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반복해왔고, 이번 SS27 쇼는 그 세계관이 처음으로 무대 전체를 장악하는 설치 공연 규모로 확장된 사례다. 다음으로 확인해볼 지점은 이 확장된 형식이 다음 시즌에도 이어질지, 아니면 이번이 정점이었는지다. 매 시즌 콘크리트와 물, 진흙 같은 설치를 반복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킨이 이 세계관을 무대 연출이 아닌 옷 자체의 디테일로 옮겨 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지도 지켜볼 만하다. 신진 디자이너가 강렬한 쇼 하나로 화제를 모은 뒤 실제 유통과 판매로 이어가는 데 성공하는 사례와 그렇지 못한 사례가 갈리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옷의 만듦새로만 보면 왁스 가죽, 거즈, 찢긴 원단처럼 상업적으로 풀어내기 쉽지 않은 소재가 많았던 만큼, 이 강렬한 이미지를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얼마나 설득력 있게 번역해내는지가 킨의 다음 행보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한 번의 인상적인 데뷔가 꾸준한 커리어로 이어지는지는 이후 시즌들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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