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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패션위크가 '보습'으로 돌아온 이유

오톨링거 SS27이 담은 보습 루틴의 미학

SoyulEditor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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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톨링거 SS27이 담은 보습 루틴의 미학

10월 2일 파리에서 열린 오톨링거(Ottolinger) 2027년 봄여름 컬렉션 쇼가 패션위크 타임라인에 작은 균열을 냈다. 테마는 다름아닌 '보습'이었다. 디자이너 코지마 가디엔트와 크리스타 뵈슈는 샤워를 마치고 몸에 크림을 바를 때 느끼는 그 순간의 감각, 즉 피부에 수분이 스며들고 요철이 매끈해지며 자연스러운 광이 올라오는 느낌을 무대 위로 옮겨왔다고 설명했다. 패션쇼는 보통 외피, 즉 완성된 옷의 형태를 보여주는 자리다. 하지만 이번엔 그 외피 아래, 피부 자체의 상태와 그 상태를 매일 돌보는 반복적인 행위가 무대의 중심 주제로 올라왔다는 점이 다르다. 화려한 실루엣이 아니라 샤워 후 몇 분의 루틴이 패션의 언어로 번역된 것이다. 여기에 전설적인 모델 하이디 클룸이 런웨이 복귀를 이 쇼로 택했다는 사실까지 겹치면서, 이 컬렉션은 단순한 시즌 신상 공개를 넘어 '매일의 돌봄'이 무엇을 남기는지를 묻는 장면으로 주목받고 있다. 보통 패션쇼가 끝나면 사람들은 다음 시즌엔 어떤 색과 실루엣이 유행할지를 묻는다. 그런데 이번 쇼가 남긴 질문은 훨씬 사소하고 반복적이다. 샤워 후 몇 분, 크림을 바르는 그 루틴을 얼마나 꾸준히 지켜왔는지가 결국 가장 오래 남는 자신감이 된다는 쪽으로 질문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화려한 신상보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반복하는 돌봄이 더 긴 수명을 갖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이 달라졌나

오톨링거는 그동안 럭셔리 패션의 전형적 형태를 메타적으로 비틀어온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탈색, 러버 처리, 해체적 재단 같은 기법으로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당연하게 전제하는 형태를 흔드는 게 이 브랜드의 특기였다. 이번 SS27 컬렉션의 테마는 그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방향이 다르다. 쇼 노트는 이번 컬렉션을 "피부에 직접 느껴지는 자신감의 레이어"로 설명하며, 시그니처 해체 기법과 뒤틀린 드레이프, 몸에 밀착되는 커팅을 통해 부드러움과 태도 사이의 긴장을 탐구했다고 밝혔다. 과거의 해체가 형태를 깨뜨리는 쪽이었다면, 이번엔 그 해체된 형태가 옷이 아니라 피부를 감싸는 보습막처럼 작동한다는 점이 다르다. 즉 옷의 목적이 '보여주는 것'에서 '영양을 주는 것'으로 재정의된다. 브랜드는 이 컬렉션이 "입장할 때보다 퇴장할 때 더 빛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패션에서 흔히 쓰는 '전후 비교'의 수사를 스킨케어 광고의 문법에서 그대로 가져온 표현이다. 여기에 하이디 클룸이 흐트러진 수트 안에 스킨타이트 보디슈트를 입고 등장해 쇼를 마무리했다는 점도 같은 메시지를 완성한다. 옷 아래 드러나는 몸의 윤곽 자체가 이번 컬렉션이 말하는 '보습된 상태'의 증거로 제시된 것이다.

왜 지금인가

패션쇼가 스킨케어의 언어를 차용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 시점에 이런 테마가 나온 데는 짚어볼 맥락이 있다. 최근 몇 시즌 동안 뷰티 업계에서는 완벽히 가공된 피부 이미지보다, 꾸준한 루틴을 거쳐 자연스럽게 올라온 광을 더 가치 있게 보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패션 역시 이 흐름과 맞물려 '입는 것'과 '바르는 것'의 경계를 흐리는 컬렉션을 늘려가는 중이다. 오톨링거처럼 해체주의를 주무기로 쓰는 브랜드가 오히려 가장 기초적인 신체 관리 행위인 보습을 테마로 가져온 것은, 자극적인 형태 실험만큼이나 매일 반복하는 돌봄이 지금 패션계에서 설득력 있는 서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이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한 이 브랜드가 지속가능성과 느린 생활 방식을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아왔다는 점도 이 테마 선택과 무관하지 않다. 빠르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패션 사이클에 반대해온 브랜드가, 옷을 한 번 입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부처럼 매일 돌보는 대상으로 재정의한 셈이다. 하이디 클룸의 복귀 역시 이 서사에 설득력을 더한다. 수십 년간 자신의 몸과 이미지를 관리해온 모델이 이 무대를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보습이라는 가장 사소하고 반복적인 행위가 결국 가장 오래가는 자신감의 기반이라는 이 컬렉션의 메시지를 몸으로 증명하는 장치로 읽힌다.

다음에 볼 것

이번 SS27 컬렉션은 파리 패션위크 공식 일정의 일부로 공개됐으며, 통상적인 시즌 사이클을 따라 내년 봄여름 시즌에 맞춰 순차적으로 리테일 라인업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눈여겨볼 지점은 이 '보습' 테마가 쇼 비주얼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제품 라인, 특히 바디에 밀착되는 니트웨어나 세컨스킨 소재 아이템으로 얼마나 구체화되는지다. 해체주의 디테일과 보습이라는 촉각적 컨셉을 동시에 구현하려면 소재 선택과 마감 방식이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지켜볼 것은 하이디 클룸의 런웨이 활동이 여기서 멈추지 않을지다. 최근 1년간 여러 브랜드 쇼에 등장해온 흐름을 보면, 이번 복귀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베테랑 모델이 다시 활동 반경을 넓히는 움직임의 한 장면으로 보는 게 더 맞다. 결국 이 컬렉션이 남기는 질문은 간단하다. 화려한 소재나 실루엣이 아니라, 매일 반복하는 돌봄의 감각이야말로 가장 오래 유지할 만한 스타일의 기반이 될 수 있는가. 오톨링거는 그 답을 무대 위 보습이라는 단순한 동작으로 제시했고, 이 질문은 패션을 넘어 일상의 루틴을 대하는 태도와 환경에도 그대로 적용될 만하다. 결국 오래가는 것은 한 벌의 옷이 아니라, 매일 같은 시간 피부에 손을 얹는 습관 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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