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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렐로의 생로랑 10년, 작별의 런웨이였나

공식 발표 없이, 모든 신호만 가리켰다

SoyulEditor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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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발표 없이, 모든 신호만 가리켰다

지난 9월 29일 저녁 파리, 에펠탑을 정면으로 마주한 트로카데로 광장에 생로랑이 원형 런웨이를 세웠다. 앤서니 바카렐로가 이브 생로랑의 뒤를 이어 이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데뷔한 지 꼭 10년, 그 기념일에 맞춰 올린 컬렉션은 공교롭게도 그의 재임 통틀어 가장 완성도 높은 무대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패션위크를 오래 지켜본 이들은 안다. 한 디자이너가 자신의 언어를 가장 또렷하게 정리해 내보이는 순간은 종종 시작이 아니라 마무리 직전에 온다는 것을. 생로랑도 바카렐로도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쇼를 둘러싼 정황들은 유독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바카렐로는 이 무대로 10년의 생로랑을 닫으려 한 것일까. 한 디자이너가 같은 브랜드에서 10번의 봄여름과 10번의 가을겨울을 반복해 준비한다는 것은, 매 시즌 같은 긴장과 같은 리듬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 반복이 쌓여 하나의 완성형에 도달하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이 쇼가 그랬다. 화려한 피날레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정리하는 손길처럼도 읽혔다는 점에서, 이번 무대는 패션쇼 한 편 이상의 질문을 남겼다. 오래 지켜온 자리를 내려놓는 일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는가 하는 질문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컬렉션은 바카렐로가 그동안 쌓아온 문법에서 한 걸음 비켜섰다. 그는 재임 내내 샤프한 테일러링과 좁은 실루엣, 가죽 소재, 이브닝웨어 중심의 영화적인 프레젠테이션으로 생로랑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다져왔다. 이번엔 금색 하나로 무대 전체를 통일했다. 창백한 금빛부터 비잔틴 톤, 번이슈드 광택, 무광 피니시까지 금의 스펙트럼을 전부 꺼내 쓴 50개 룩이 트로카데로에 설치된 3개의 대형 금빛 샹들리에 아래를 돌았다. 눈에 띄는 변화는 소재의 쓰임이다. 그동안 이브닝웨어의 전유물이던 크링클 라메를 사파리 재킷과 크롭 봄버, 벨트 트렌치 코트처럼 낮에 입는 실용적인 옷으로 재단해 냈다. 화려함을 밤에서 일상으로 끌어낸 셈이다. 객석의 구성도 그 자체로 신호였다. 케이트 모스, 조이 크래비츠, 로제, 제리 홀, 헤일리 비버, 카를라 브루니,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라미 말렉, 마크 론슨까지 생로랑을 대표해온 앰버서더들이 총출동해 사실상 브랜드 역사를 집대성한 프런트로우를 완성했다. 더 눈에 띈 건 경쟁 하우스의 수장들이었다. 도나텔라 베르사체와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가 나란히 참석했고, 관객 전원이 약속한 듯 검은색 옷을 입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패션쇼 객석은 보통 그 시즌의 옷과 어울리는 색으로 흩어지기 마련인데, 이번엔 금빛 런웨이를 검은 옷의 객석이 에워싸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무대와 객석이 상복처럼 대비를 이루는 장면은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왜 지금인가

창립자 이후 한 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10년을 채우는 일은 지금의 패션계에서 흔치 않다. 최근 몇 시즌 사이 주요 메종들의 수장 교체가 유난히 잦아지면서, 한 사람의 언어가 브랜드와 10년 가까이 밀착하는 장면 자체가 희소해졌다. 그런 흐름 속에서 바카렐로의 이번 쇼는 단순한 신작 발표를 넘어, 오래 지켜온 자리를 정리하는 의식처럼 읽힐 여지를 만든다. 패션계에서 고별 무대는 대개 조용히 예고된다. 공식 성명 대신 상징으로 먼저 말한다. 금색이라는 단일 색채로 쇼 전체를 묶은 구성, 재임 기간의 시그니처였던 밤의 소재를 낮의 옷으로 풀어낸 선택, 그리고 경쟁 하우스 수장들까지 자리를 지킨 프런트로우는 전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후임으로는 현재 끌로에를 이끄는 케메나 카말리의 이름이 업계에서 거론되고 있지만 어느 쪽도 공식 확인은 없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기사를 맡기기보다, 지금 분명한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 디자이너가 10년 동안 한 자리에서 쌓아온 언어가 완성형에 도달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완성형이 다음 시즌에도 같은 손끝에서 이어질지 아직 아무도 확정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같은 자리로 돌아와 같은 리듬을 지켜온 10년이기에, 지금 이 시점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다음에 볼 것

가장 먼저 확인할 지점은 생로랑과 바카렐로 양측의 공식 입장이다. 지금까지 어느 쪽도 거취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이 침묵이 언제 어떤 형태로 깨지는지가 이번 사안의 실질적인 분기점이 된다. 후임으로 거론되는 케메나 카말리의 향방도 함께 지켜볼 만하다. 끌로에에서의 임기와 생로랑 이적설이 동시에 떠도는 지금, 두 하우스 중 어느 쪽에서든 공식 발표가 먼저 나온다면 이번 쇼의 해석에도 답이 붙는다. 상업적으로는 이번 컬렉션의 금빛 데이라인이 어떻게 소비자에게 가닿을지도 변수다. 이브닝 전용이던 소재를 사파리 재킷과 트렌치 코트처럼 일상에서 반복해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옮긴 선택은, 이번 쇼가 단지 작별의 상징에 그치지 않고 다음 시즌 판매로 이어지는 실질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이것이 실제로 바카렐로의 마지막 컬렉션이라면, 그가 10년에 걸쳐 정리해온 샤프한 테일러링과 영화적 프레젠테이션이라는 문법이 후임 체제에서도 얼마나 유지되는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 한 사람이 떠나도 그가 다져온 리듬이 브랜드 안에 얼마나 오래 남는지, 그것이야말로 이 소식이 패션 바깥의 독자에게도 던지는 질문이다. 10년을 채운 사람의 손끝이 남긴 습관은 후임이 누가 되든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한 계절도 아니고 스무 번의 계절을 같은 태도로 통과했다는 사실 자체가, 다음에 누가 그 자리에 서든 참고할 수밖에 없는 기준선을 남겼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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