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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가 흐른 런웨이, 디페차가 던진 모성의 재정의

런던 패션위크 SS27, 홀리 밀크가 남긴 질문

SoyulEditor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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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패션위크 SS27, 홀리 밀크가 남긴 질문

런던 패션위크 SS27의 마지막 날, 그리스 출신 디자이너 디페차(Di Petsa)의 피날레 런웨이에서 진짜 모유가 흘렀다. 임신한 배를 드러낸 채 걷던 리틀믹스 출신 리앤 피녹(Leigh-Anne Pinnock)이 런웨이 한가운데서 멈춰 서자, 그의 가슴에서 액체가 흘러나와 주변에 웅크린 모델들을 적셨다. 이번 시즌 컬렉션의 이름은 '홀리 밀크(Holy Milk)'. 그동안 미아 칼리파를 런웨이에 세우거나 모델에게 객석 관객과 입을 맞추게 하는 식으로 화제를 만들어온 디자이너가, 이번에는 도발이 아니라 몸이 겪는 실제 변화, 즉 모성이라는 주제를 무대 한가운데로 끌고 왔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무게를 갖는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전까지 디페차의 화제성은 설정된 자극에 기대는 쪽이었다. 이번 시즌은 다르다. 런웨이에는 실제 아기를 안고 걷는 모델이 두 명 등장했는데, 본인의 아기로 추정된다. 한 모델은 런웨이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객석 맨 앞줄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파트너에게 입을 맞췄고, 성인 여성 모델이 젊은 남성 모델과 함께 걸어 모자 관계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있었다. 또 다른 순간에는 한 커플이 손을 잡고 걷다가 포토그래퍼들이 모인 피트 앞에서 격정적으로 키스를 나눠, 마치 생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듯한 연출을 보였다. 이 모든 장면의 정점은 피녹의 피날레였다. 실제 임신한 몸, 실제 아기, 실제 커플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이번 컬렉션은 '모성을 소재로 한 이미지'가 아니라 '모성을 겪고 있는 사람들 자체'를 무대에 세운 셈이다. 정작 디페차 본인은 아직 자녀가 없다. 그는 이를 두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품고 있다. 내면에서 감당하기엔 너무 커져버린 스스로의 다른 버전을 낳는 것"이라는 취지로, 모성을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사건을 넘어 자기 자신이 변화하고 확장되는 과정 전체로 확장해 설명했다. 개별 장면만 떼어 보면 저마다 자극적으로 읽힐 수 있는 순간들이지만, 하나의 컬렉션 안에 놓이자 이들은 산발적인 화제몰이가 아니라 임신·출산·양육으로 이어지는 몸의 시간 전체를 하나의 서사로 묶어내는 장치로 기능했다.

왜 지금인가

패션 런웨이에서 임신하거나 출산 직후의 몸이 이렇게 정면으로, 그것도 시즌의 가장 중요한 피날레 자리에 등장하는 일은 흔치 않다. 하이패션 런웨이는 오랫동안 체형이 고정된, 변형되지 않은 몸을 기본값으로 삼아왔고, 임신·수유·산후 회복처럼 몸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상태는 무대 위에서 다뤄지기보다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디페차는 애초에 물에 젖은 듯한 드레이핑, 몸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질감을 자신의 시그니처로 삼아온 디자이너였다는 점에서, 이번 '홀리 밀크'는 갑작스러운 이벤트가 아니라 브랜드가 원래 다뤄온 몸과 체액의 미학이 모성이라는 구체적 서사와 만나 자연스럽게 심화된 결과로 읽힌다. 시점도 상징적이다. 런던 패션위크 SS27의 마지막 날, 그것도 버버리를 앞두고 셀라시·톨루 코커·신예 리자 킨 등 다른 쇼들이 이어지던 와중에 배치된 피날레였다는 것은, 이 브랜드가 시즌을 통틀어 가장 강한 메시지를 마지막 순간에 터뜨리는 전략을 택했다는 뜻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장면이 이미 널리 퍼졌다는 사실 자체가, 화려한 볼거리보다 실제 몸의 경험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쪽이 오히려 더 강하게 반응을 끌어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몇 주째 이어진 패션위크 일정 속에서 룩 자체로 눈길을 끌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즌 막바지라는 점도 고려할 만하다. 연출된 자극이 아니라 실제로 겪고 있는 몸의 사건이라는 점이 오히려 더 오래 회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에 볼 것

이 쇼는 런던 패션위크 SS27의 사실상 마지막 하이라이트였다. 같은 날 버버리가 시즌을 공식적으로 마감하는 피날레 쇼를 앞두고 있었고, 디페차의 무대는 그 직전 화제를 선점한 셈이다. SS27이라는 이름대로 2027년 봄여름 시즌을 겨냥한 컬렉션인 만큼, 이 옷들이 실제 매장에 걸리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 눈여겨봐야 할 것은 옷 자체보다 반응이 퍼지는 방향이다. 피녹의 피날레 장면은 쇼가 채 끝나기도 전에 소셜미디어에서 먼저 퍼졌는데, 이는 런웨이 위 한 순간이 프레스 리뷰보다 짧은 클립 단위로 먼저 소비되는 지금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앞으로 지켜볼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디페차가 다음 시즌에도 실제 몸의 변화를 소재로 삼는 이 방향을 이어갈지, 다른 하나는 이번 반응을 계기로 다른 브랜드들도 전문 모델이 아닌 실제 가족과 파트너를 캐스팅에 들이는 시도를 늘릴지 여부다. 이 장면이 한 시즌의 해프닝으로 끝날지, 런웨이가 몸을 다루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될지는 다음 시즌이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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