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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모스, 170년 된 장화를 다시 신다

헌터 170주년, 오래된 것들의 귀환

SoyulEditor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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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170주년, 오래된 것들의 귀환

영국 신발 브랜드 헌터(Hunter)가 창립 170주년을 맞아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와 다시 손을 잡고, "본성 그대로 아이코닉하다(Iconic by Nature)"라는 제목의 2026 가을·겨울 캠페인을 공개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마케팅에서 먼저 시작된 게 아니라, 2000년대 초반 한 페스티벌 현장에서 케이트 모스가 짧은 반바지와 조끼 위에 무릎까지 오는 검정 웰링턴 부츠를 아무렇게나 신고 진흙탕을 걸어 나온 순간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이번 재회는 더 눈길을 끈다. 그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텀블러와 핀터레스트를 타고 퍼지는 사이, 원래는 농장과 정원 노동용으로 만들어졌던 실용적인 이 장화는 어느새 페스티벌 룩을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자리를 옮겼고, 캠페인 제목이 담은 '아이코닉하다'는 표현도 새로 만든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쌓여온 평판을 재확인하는 쪽에 가깝다. 매 시즌 새로운 실루엣이 쏟아지고 유행이 몇 달 단위로 바뀌는 패션 산업에서, 한 켤레의 장화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 동안 스타일 아이콘의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이 협업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이자, 오래 신어도 질리지 않는 물건이 여전히 드물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AW26 컬렉션의 중심은 창립 170주년 기념 '오리지널 톨 웰링턴 부츠'다. 유럽 라인업에서는 브랜드가 가장 처음 선보였던 초록색 컬러웨이를 그대로 재현하고, 금색 하드웨어와 "Since 1856"이라는 헤리티지 배지를 더했다. 처음 만들어진 순간의 디자인을 그대로 복원하면서도, 17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맞게 마감을 고급화한 셈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헌터는 전통적인 고무장화의 틀을 넘어서는 기술적 실루엣도 함께 내놓았다. 방수 기능을 강화한 다운푸어 톨 부츠, 네오프렌 소재의 첼시 부츠, 초음파 용접 방식으로 만든 PU 소재 패딩 재킷 '엘리먼츠 렘히'까지, 비 오는 날에만 신는 장화에서 겨울 전체를 책임지는 아우터웨어 라인으로 영역을 넓혔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같은 오리지널 톨 웰링턴 부츠를 블랙 크록 가죽 패턴으로, '지아니아 스웨이드 톨 부츠'는 초콜릿 브라운 컬러로, 눈길에 맞춘 '마리벨 퍼피 스노 부티'까지 지역 기후에 맞춘 라인을 따로 구성했다. 여기에 PU 소재 카라를 단 '벡스 시그니처 헌팅 재킷'을 비롯한 스포츠웨어·아우터웨어도 함께 갱신됐다. 즉 이번 변화의 핵심은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매일 신고 입을 수 있는 범위를 늘린 기능이라는 점이다. 비 오는 날에만 신발장에서 꺼내던 장화가 눈길과 초겨울 외출까지 감당하는 아우터로 확장됐다는 건, 계절 하나를 통째로 책임지는 옷장 기본템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 지금인가

헌터가 이 컬렉션을 가을·겨울 시즌에 맞춰 내놓은 데는 여러 이유가 겹쳐 있다. 우선 웰링턴 부츠 자체가 비와 진흙, 초겨울 눈길을 상대하는 신발이라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이 가장 자연스러운 구매 시점이다. 매년 이맘때 신발장을 정리하며 올겨울은 무엇을 신을지 고민하는 독자라면, 오래된 장화 브랜드가 던지는 이번 신호를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여기에 창립 170주년이라는 숫자가 더해지면서 브랜드는 단순한 신제품 출시가 아니라 오래 살아남은 것의 가치를 이야기할 명분을 얻었다. 케이트 모스를 다시 불러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녀는 헌터의 광고 모델이기 이전에, 실제로 진흙탕을 걷기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장화를 신었던 사용자였다. 브랜드가 의도한 마케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상적 선택이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은 드문 사례이기 때문에, 헤리티지를 되짚는 지금 시점에 가장 설득력 있는 얼굴이기도 하다. 최근 패션 업계 전반에서 신소재나 새로운 실루엣보다 브랜드 고유의 오래된 디자인을 복원하는 흐름이 두드러지는 것도 배경으로 볼 수 있다. 빠르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옷과 신발이 늘어난 시대에, 20년을 신어도 여전히 알아보는 디자인이 오히려 희소한 가치로 평가받고 있는 셈이다. 유행을 좇는 대신 손에 익은 물건을 계절마다 다시 꺼내 쓰는 루틴이 각광받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다음에 볼 것

이번 컬렉션은 이미 헌터 공식 홈페이지와 일부 리테일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다만 지역별로 구성이 다르다는 점은 미리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는 170주년 기념 초록색 오리지널 부츠가 중심이지만,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블랙 크록 패턴이나 초콜릿 브라운 스웨이드 부츠처럼 다른 컬러·소재 조합으로 판매된다는 점에서, 본인이 사는 지역의 라인업을 먼저 살펴보는 편이 헛걸음을 줄이는 방법이다. 순수하게 헤리티지를 소장하고 싶다면 금장 배지가 달린 초록색 오리지널 톨 웰링턴이, 눈이 많이 오는 지역에 살거나 겨울철 실용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면 네오프렌 첼시 부츠나 마리벨 퍼피 스노 부티 쪽이 일상 루틴에 더 잘 맞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지켜볼 지점은 헌터가 이번처럼 헤리티지 복원과 기술적 확장을 함께 묶는 방식을 앞으로도 이어갈지 여부다. 창립 기념일이라는 계기가 지나간 뒤에도 이 기술 지향 라인이 정규 컬렉션으로 남는다면, 장화 브랜드에서 사계절 아우터 브랜드로 영역을 넓히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무엇을 고를지 고민된다면 기준은 결국 하나다. 화려한 디테일보다, 이 장화를 몇 번의 겨울에 걸쳐 신을 것인가를 먼저 물어보는 편이 후회 없는 선택에 가깝다.

Kate Moss GoesHunterBritishKate MossAutumn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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